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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의 역사와 추억

제목

화성시의 역사와 추억

창작의도

화성시의 역사를 알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던 추억들이여서 역사를 조사해보고 우리 화성시의 미래도 생각해보았다.

그림 이야기

2019년, 초등학교 2학년때 화성시 윤건릉에 갔다.화성시에서는 융건릉이 유명하다.융건릉의 역사로는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동대문구 백봉당에서 이곳 화성으로 천장했다.  왕으로 추존될 것을 예측하였는지 왕릉에 버금가는 규모로 잘 조사했다. 융릉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수은 묘-영우원-현 응원-융릉으로 바뀌었다. 영조는 38년 사도세자가 노론 벽파의 투서로 뒤주 속에 갇혀 8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애초에 배봉산에 묘를 조심하여 ‘수은 묘'라하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장현세사라는 전하를 올려 ‘묘'를 '원'으로 격상 ‘영우원’ 이 되었다. 이후 현재의 화성으로 옮기면서 ‘현 증원'이라고 했다. 을 남긴 한국경제의 황후(혜경궁) 홍 씨가 세상을 떠나자, 순조는 현 응원에 사도세자의 합장으로 원을 조성했다. 그 후 대한제국 선포 후 광무 3년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자 등으로 생산되어 ‘융릉'이라 하였다. 건릉은 정과 효의왕후 김 씨의 등이다. 사도세자의 현륭원(융릉) 동쪽 언덕에 정조의 능을 만들었다. 정조의 왕비 효의 선 황후 김 씨가 묻자, 건릉 자리가 풍수상 좋지 않다는 설에 따라 순조는 현륭원 서쪽 언덕으로 천장하여 합장을 새로 조성하였다. 사도세자 사실 왕세자로서의 뛰어난 면모를 갖춰 부왕 영조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래서 영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켰으나, 그를 경계하는 노론 벽파 대신들이 왕세자를 모함하여 영조와 장세자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결국 형조판서 유급의 청지기 나경원이 세자의 비행을 고하는 상소를 올리자, 영조는 나경원을 처형하고 또한 왕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하고 말았다. 정조는 즉위 후 먼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며, 노론 벽파를 경계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왕권을 강화하고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였다. 규장각을 설치, 신분의 제약 없이 능력과 학식 위주로 인재를 등 통하였다. 정약용 같은 실학자를 양성 조선 후기 부흥기를 가져왔다. 가난한 백성의 구제를 위하여 노력하였고, 국가 제도 개편에도 힘을 기울였다. 수원화성을 건축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12차에 걸쳐 행차한 정조의 은행은 단순한 아버지에 대한 오행의 참배뿐만 아니라 행차 중 3천5백여 건의 민원을 처리하고  백성과 직접 소통하였다. 융건릉은 조선왕릉이라는 역사적 장소 되어도 200년 수령의 소나무 숲이 정관이며 넓디넓은 숲속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4월 동생과 윤건릉 묘 잔디밭에서 뛰어놀았다. 그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동생과 술래잡기하던 일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정말 하늘 위에 새가 된 것처럼 즐거웠다. 책에서만 보던 곳을 실제로 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왕의 무덤을 내가 눈으로 실제로 보고 역사를 배우니 더욱 이해가 잘되고 역사에 대해서 흥미가 생긴 거 같았다.  2020년 초등학교 3학년 때 공평왕에 갔었다. 낙조가 (석양)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 공평 왕은 2008년 국가 어흥 올 지정되었으며 싱싱하고 맛 좋은 수산물들이 가득한 수산물 시장이 잘 갖추어져 있는 작은 항구다. 조그만 배와 낚시꾼들을 유혹하는 매력적인 다리언 피싱피어에서 낚시를 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며, 화성시 해변 쪽을 걸어갈 수 있는 화성 실크로드 산책로가 나무 테크로 조성되어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산책하거나 하이킹하는 사람들의 쉬어가는 길목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튀김과 오징어튀김, 어묵, 핫도그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으며 궁평함 광장에는 여름철 물놀이터도 개장하기 때문에 가족끼리 물놀이를 즐기기에 좋다. 공평왕에 가서 요트를 탔는데 뱃멀미가 조금 나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요트를 타다가 낚시도 했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재미있었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바지락 칼국수와 대하구이는 정말 맛있었고 아직도 기억나는 맛이다. 동생과 안전한 놀이터에서 놀기도 했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부모님도 안전해서 괜찮다고 하셔서 동생과 신나게 뛰어놀던 일이 기억난다. 작지만 정감 있고 따뜻하고 맛난 음식이 생각 나는 곳이다. 고기잡이배와 어우러진 작은 항구의 낙조가 너무 예뻤다.  많은 역사를 가진 화성시가 오늘날에도 많이 발전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동탄에 이사 와서 좋은 친구들과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중학교에 입학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화성시가 점점 발전되고 있어 나의 하루하루도 점점 편해지고 즐거워져 가는 거 같다. 많은 역사를 가진 화성시에서 사니 역사를 배울수 있는 기회가 많아 역사에 대한 흥미도 생겼다. 화성시 동탄에 이사 온 것은 정말 잘한 거 같다. 그리고, 화성시 인구가 100만이 넘었다는 것이 놀랍다. 예전에는 20만명이었지만 나날이 발전해 가 벌써 100만명이라는 큰 인구가 우리 도시 안에 있다. 앞으로도 화성시에서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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