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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 속의 화성시

제목

내 머릿 속의 화성시

창작의도

화서시에 대한 아름다운 역사를 조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림 이야기

2035년 9월 13일 갑자기 화성시의 역사와 화성시의 문화유산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화성시의 유적은 태안,봉담,향남 및 길성리 토성 주변,서해안에 접한 우정읍-장안면 일대,마도면-서신면,오산-동탄 지역 등에서 다수 조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적들을 통해 선사시대 이래 사람들의 거주 양태와 정치 세력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여 볼 수 있다고 한다. 화성 지역의 마한 소국은 지명 발음이 유사성과 유적의 분포를 고려하여 봉담읍 지역을 모수국으로, 남양읍-비봉면 일대를 원양국으로, 우정읍-장안면 일대를 상외국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들 소국은 늦어도 4세기 무렵에는 백제에 흡수 되었다고 한다. 화성시 내에서 삼국 시대 이래의 주요 거점은 지금의 남양읍과 봉담읍 일대이다. 그리고 남양읍 일대는 당성,당은,남양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봉담읍 일대는 매홀,수성,수주,수원등의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남양읍과 봉담읍 일대는 화성시 역사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다고도 한다. 지금의 화성시가 되기까지 이런 일이 있었다니, 정말 놀랍다. 화성시는 다수의 국가 지정 문화재와 시도 지정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먼저 삼국 및 남북국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로는 사적으로 지정된 ‘화성 당성'이 있다고 한다. 화성 당성은 당항성으로 비정되는 성으로, 삼국 및 남북국 시대 화성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조선 시대 문화유산으로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인 ‘화성 융릉과 건릉' 이 대표적인데, 역시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고 한다.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재창건 된 용주사에도 국보로 지정된 용주사 동종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재도 남아있다고 한다.   역시 화성시다. 내가 지금 이런 역사와 멋진 문화유산을 가진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지금 화성시는 외국인들도 자주 놀러온다. 아, 서울대의 위치가 화성시로 바껴서 이름도 화성대가 됐다 지금은 하늘에 자동차도 날아다니고 통일도 됐다. 몇 십년 전에 말로만 하던 기차타고 세계 여행도 가능하다. 일본과 해저 터널로도 연결 되있다. 다시 한 번 화성시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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